딥 러닝 :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의 세상이 온다, RU Ready?

딥 러닝 :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의 세상이 온다, RU Ready?

혁신가이드 안병민 대표
혁신가이드 안병민 대표

목소리부터가 카랑카랑하다. 영역을 가리지 않는 전 방위적 활동으로 무척이나 바쁜 그가 오늘은 '뇌 과학과 인공지능의 미래'란 주제로 강의 무대에 섰다. 독일 막스-플랑크 뇌 과학 연구소에서 뇌 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MIT에서 뇌인지 과학으로 박사후 과정을 밟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뇌 전문가 중 하나인 그다. 그가 이야기하는 뇌와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와 짚어보는 뇌 얘기다.

▶ 하드웨어로서의 뇌 : 나는 나의 뇌일까?

천재적인 행동, 악마적인 행동, 장난꾸러기 행동 등 모든 행동은 뇌에서 비롯된다. 모든 생각과 느낌 또한 뇌에서 만들어진다. 지금껏 인류가 뇌의 구조와 작동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그런데 말입니다. 뇌를 해부하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생각과 느낌, 영상들이 없는 거에요. 신경세포들간의 연결성만 존재하더라는 겁니다. 과연 뇌의 어떤 메커니즘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 느낌,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김대식 교수는 피니어스 게이지 사례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1823~1860)는 미국 어느 철도 공사 조직의 감독관이었다. 어느 날 작업 중 실수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였고, 그 폭발의 충격으로 철 막대기가 게이지의 왼쪽 뺨에서 오른쪽 머리 윗부분을 관통했다. 그 결과, 그는 두개골의 상당 부분과 왼쪽 대뇌 전두엽 부분이 손상되는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복을 한 게이지. 그러나 놀라운 것은 사고 전후로 그의 성격과 행동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거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한 그의 성격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그를 더 이상 게이지로 보지 않게 될 정도였다. 이 사건으로 대뇌 전두엽 손상이 사람의 성격과 행동에 큰 변화를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19세기 신경과학에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전두엽이 인간의 성격을 관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장 환경이나 부모를 통한 가정 교육 같은 변수들이 아니라 우리 뇌가 사람을 바꾼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런 철학적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나는 누구냐는 거지요? 나는 나의 뇌일까요?”

소프트웨어 차원에서만 바라보았던 뇌가 하드웨어로서 기능한다는 설명이다. 사람의 경험과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의 뇌세포 몇 개가 이렇게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꾸어 버린다는 것. 그렇게 보면 ‘나는 나의 뇌’라는 이야기도 결코 부정할 수만은 없는 명제다.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또 다른 일이다. 어떤 사람이 사고를 쳤는데 알고 보니 뇌 전두엽에 암이 있더라는 것. 그래서 자율의지가 아니라 병에 의한 일탈 행동이었다는 게 변호사의 변론 요지였다. 하지만 판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는 거다. 그러니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의 신경세포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책임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설령 자유의지가 아닌 뇌 신경세포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 말이 과학적으로는 맞다 하더라도 그런 논리로는 사회가 무너진다라는 게 판사의 판결 배경이었다.

▶ 브레인리딩(Brain Reading) : 사람의 뇌를 해킹하다

현대 뇌 과학에는 다양한 도구가 활용된다.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공명영상)가 대표적이다. 인간이 특정 활동을 할 때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뇌의 운영체제에 대한 비밀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뇌는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그 반응 패턴을 분석하니까, 그리고 그 분석 데이터가 쌓이니까, 추론이 가능해진다. 즉, 피험자가 뭘 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뇌의 반응 패턴만 보고서도 뭘 보고 있는지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브레인리딩(Brain Reading)’, 즉 남의 뇌를 읽을 수 있다는 거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를 겪고 있는 환자가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지만 그의 뇌는 살아있다. 그런 그가 자기의 팔을 든다고 상상을 한다. 그 생각을 로봇 팔이 구현해주는 방식의 실험이다. 아직 완전치는 않지만 이런 원리를 활용한 과학 실험은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런 ‘브레인리딩’ 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껏 정지된 이미지, 사진을 통해 뇌의 반응 패턴을 분석했다면 이제는 동영상을 통한 분석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정 동영상을 보는 사람의 뇌를 추적하여 과학적 추론을 통해 화면을 새롭게 구성하는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 그 사람의 뇌가 보고 느끼는 것과 거의 비슷한 화면이 구현된다. 이런 연구를 하는 학자들을 구글에서 스카우트했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이런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글 글래스에 상대방의 뇌 반응 패턴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이 장착되는 건 아닐까 하는. 사람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마케팅하는 것도 이젠 공상과학 영화에만 나오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또 다른 실험 하나. 피험자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그들의 게임 화면에 랜덤으로 숫자를 보여준다. 20~30밀리세컨드 정도의, 인간의 감각이 포착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숫자를 화면에 노출한다. 피험자는 화면에 숫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게임에 집중한다. 하지만 뇌를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이 숫자들에 뇌는 반응을 보인다. 그 패턴을 분석했더니 특정 숫자들에 다소 강한 반응이 잡혔다. 알고 봤더니 이들이 실생활에서 자주 쓰는 그들의 비밀번호다. 놀랍고 무서운 일이다. 뇌를 해킹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응용한 사례들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할 때 사진을 찍는다. 이 짧은 순간 카메라를 통해 테러리스트 지도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사진에 대한 우리 뇌의 반응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적발해 낼 수도 있다는 거다. 이미 시행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사례다.

나도 모르는 내 생각을 알 수 있는 세상이 눈 앞에 있다. 이렇게 계속 뇌 과학이 발전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발생한 뇌의 반응 패턴을 내 머리에 이식한다면? 말 그대로 ‘기억 복사’다. 실제 체험하지도 않은 경험을 이제 나의 머리 속에, 아니 나의 뇌 속에 이식할 수 있는 세상인 셈이다.

▶ 뇌가 보는 세상, 실제와는 다르다

뇌는 사실 우리 현실을 알 수가 없다. 두개골 안에 갇혀있는 1.5kg의 고기 덩어리일 뿐이라서다. 사람 몸에서 감각 센서가 없는 유일한 기관이 바로 뇌다. 뇌가 세상을 못 느끼는 이유다. 그래서 뇌는 신체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패턴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오감은 완벽한가? 완벽하다 하더라도 그 감각이 뇌에게까지 정확하게 전달될까? 그렇지 않다. 왜곡된 정보가 발생한다. '보고 듣고 느낀다'라는 건 결국 뇌의 ‘해석’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뇌가 주관적인 ‘해석’을 한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인간관에 입각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경제학 이론들은 그래서 나오는 거다.

뇌가 저지르는 잘못된 해석들의 사례는 많다. 주변의 맥락을 제거하면 제대로 보이지만, 뇌는 오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의 해석을 입힌다. 뇌라는 하드웨어 자체의 문제다. 여기 중요한 시사점이 숨어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틀릴 수 있다라는 거다. 나의 뇌를 믿어서는 안 될 일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원들의 그림? 같은 맥락이다. 이 원들은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뇌는 망막을 믿지 않는다. 뭔가 이상한 패턴을 보고 뇌는 그냥 움직인다고 '간주'하고 ‘해석’한다. 얼마 전 인터넷 세상을 후끈 달구었던 ‘흰검 드레스’ 논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화이트&골드' 색상으로 보이는 드레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블랙&블루' 컬러로 보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왜 같은 물체가 다르게 보이는 걸까요? 사실 세상 만물은 우리가 보는 것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형태, 색깔, 입체는 뇌가 만든 착시 현상일 뿐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오감의 감각에다 뇌의 ‘해석’이 덧붙었다는 의미지요. 즉, 실존을 뇌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를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고? 이렇게 생각해보자. 예컨대, 눈 앞에 빨간 사과가 있다. 하지만 사과의 실제 색깔은? 표현할 수 없다. 빨갛기도 하고, 군데군데 살짝 푸르고, 누르스름한 끼가 돌기도 하고, 얼핏 보니 연두 빛깔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색깔을 표현할 언어가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그냥 두루뭉술하게 '빨갛다'라고 표현하는 거다.

다시 말해, 언어의 해상도가 인식의 해상도보다 훨씬 낮다는 거다. 그러니 실존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언어와 1대 1로 매칭될 수가 없다. 그러니 같은 드레스를 보더라도 전혀 다른 색깔로 인식하는 거다. 결국 우리는 다른 걸 보며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같은 언어로 소통했음에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론이다.

뇌가 다르면 만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만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저마다 다른 뇌를 가진 우리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세상을 보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 집중, 내 삶의 속도를 편집하다

“이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다들 느끼시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시간이 빨리 흘러갑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설명들을 합니다만 뇌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뇌 정보 전달 속도가 나이 들었을 때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뭐냐? 세상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거에요. 뇌의 정보 수집 빈도가 높다는 거지요. 쉽게 말하면 어릴 때는 세상 정보를 1초에 100번 받아들인다면 나이가 들면 1초에 10번 받아들이는 겁니다. 세상 정보에 대한 프레임 수가 많은 거지요. 그러니 어릴 땐 삶의 속도가 슬로모션으로 느껴지는 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실감하던 터다. 만약 이 이론을 응용하면 오래 살 수 있는 방법도 그리 어렵진 않겠다. 인지적 차원에서 세상을 자주 샘플링하면 되는 거다. 바로 집중이다. 중요한 일에 대해 집중하면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아니 더디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천 년을 살아도 세상에 대한 정보를 태어나서 한 번, 죽을 때 한번 받아들인다면 인생은 한 순간일 뿐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미 세상은 존재하고 있었다. 난 동의한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세상에 태어난 거다. 그런데 먼저 태어난 존재들이 이미 이런저런 규칙들을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우리는 그 규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세상이 갑이고 우리는 을이라는 얘기다.

이 갑을 관계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관건은 집중이다. ‘삶의 주인공이 돼라’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주인공보다 감독이 되어야 한다. 감독은 편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삶의 소중한 순간에 집중하시라. 그러면 되는 거다. 집중하지 않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거다. 내 삶을 내가 마음대로 편집하는 거다. 나의 뇌를 중심으로 세상 모든 것을 새롭게 구성하면 되는 거다. 뇌를 공부하니 삶이 자유로와진다. 집중 또 집중할 일이다.


▶ ‘딥 러닝(Deep Learning)’ :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의 세상

우리는 자연스럽게 걸어 다닌다. 이렇게 쉬운 일이 기계들에겐 왜 어려운 걸까? 지능이 없기 때문이다. 기계가 이런 일들을 쉽게 해 내려면 인간이 기계에게 설명을 해 줘야 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설명하는 사람이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문제의 답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된다.

그런데 바로 이 두 번째 조건이 문제다. 아까도 살펴보았지만 실존과 우리의 언어가 결코 1대1로 매칭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마다 자신만의 뇌로 저마다의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뭔가 통일된 체계로 기계에게 설명을 해줄 수가 없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강아지란 무엇인가?'를 기계에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 발로 걷는 것? 멍멍 짖는 것?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그 특징들을 설명하려니 한도 끝도 없다. 그 변주가 너무 많다. 이걸 다 표현하려니 설명이 불가능한 거다. 보편성과 구체성의 충돌이다. 그러니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은 하고 있는 일이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인간은 세상을 설명을 통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은 설명 없는 학습, 즉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뇌의 구조는 수직적 위계 구조다. 이런 뇌의 사물 인식 과정을 모방한 개념이 바로 ‘딥 러닝(Deep Learning)’이다. 인공신경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기계학습 방법인 ‘딥 러닝’은, 사람의 사고 방식을 기계에게 가르치는 기계학습의 한 분야다. 250년 전의 증기기관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지식 대혁명을 이끌 혁신적인 개념이다.

지금껏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서 시도했던 건 사람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었다. 기계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단어가 우리에게 없다는 거다. 즉 설명이 불가능한 거다. 표현이 안 되는 거다. 느낌은 기계화 할 수 없으니 느낄 수 있는 기계를 못 만든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 엄청난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년, 200년은 걸릴 거 같다고 이야기하던 것들이 이젠 10, 20년 정도면 될 것 같다는 전문가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다. 바로 ‘딥 러닝’ 때문이다.

‘딥 마인드’라는 영국 회사가 있다. 맞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 러닝’ 회사다. 이 회사를 구글이 4천 억원 (실제는 8천 억원이라는 설)을 주고 인수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규칙을 추론해낸다. 기계가, 게임을 하는 사람을 보고 그 게임의 룰을 파악하는 거다.

‘딥 러닝’은 기계가 학습을 한다는 개념이다. 데이터만 있으면 기계가 알아서 학습을 한다. 이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간단한 예를 들자면, 이젠 기계가 최적화된 컴퓨터 코딩을 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코딩 프로그래머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런 세상은 지금 눈 앞에 와 있다. 영어로 연설을 하면 기계가 실시간으로 중국어로 번역을 해주는 세상이다. 스카이프를 인수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여기에 동시통역 시스템을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3~4년 전만 해도 인공 지능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딥 러닝’ 개념을 통해 인공지능은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이 아마도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이전의 비행 시도들은 새를 모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는 공기 역학을 응용했다. 날개 위와 아래를 지나는 공기의 속도가 달라지면 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뇌와 인공지능의 비밀도 이렇듯 아주 단순한 한 줄의 사실일 수 있다. 물론 디테일이 필요하다.

▶ 인공지능, 인류에게 기회일까 위협일까?

인공지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이다. '약한 인공지능'은 독립성이 없다. 의도, 주장 등의 독립성이 들어가면 '강한 인공지능'이 되는 거다. '강한 인공지능'은 아직 SF영화 속 이야기지만 '약한 인공지능'은 가까운 시간 내에 구현 가능하리라 보인다. 그렇다면 준비를 해야지. 무슨 준비냐고? 기계가 인간을 추월하는 현상의 위험성이 곧 가시화될 수 있다는 거다. 인간은 이제 뭐 해서 먹고 살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는 <기계와의 경쟁>의 저자 에릭 브린욜프슨도 강조하는 바다. 엄청난 기술 발전의 속도로 인해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한 ‘노동의 종말’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거다. 생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인간의 역할은 트랙터 도입과 함께 사라진 말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감소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2013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한 경제학 논문에는 인지 자동화가 되면 미국과 영국의 노동시장에서는 지금 존재하는 직장의 47%가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웬만한 화이트칼라 일자리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그 자리를 이제 기계가 차지한다. 그럼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이 있다면 그게 뭘까? 전문가들은 그게 바로 인공지능일 거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을 발명하고 나면 이후에는 사람을 대신하여 인공지능이 알아서 발명을 할 거라는 이야기다.

그 정도로 인공지능과 관련한 기술 발전은 비약적이고 극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럼 앞으로 뭐가 바뀔 거냐고. 하지만 이건 질문이 잘못되었다. 뭐가 바뀔 거냐가 아니라 뭐가 바뀌지 않을 건지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늘 선형적인 변화만 인식한다. 그러다 준비 없이 당하고 만다. 어느 순간 말을 대체했던 마차처럼, 뒤이어 그 마차를 대체했던 자동차처럼, 세상은 그렇게 기하급수적 개념으로 격변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가히 공포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인류의 절망이 눈에 아른거린다. 앞으로 50~100년 정도면 '강한 인공지능'도 가능할 거 같다는 전망도 있다. 이후의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인류 멸망’이다.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 온 지금까지의 논리 아닌 논리가, '강한 인공지능' 앞에선 설득력을 잃는다. '강한 인공지능'은 수리적 계산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계산을 해 본다고 상상해보자. ‘지구 더하기 인간’이 더 좋을까? ‘지구 빼기 인간’이 더 좋을까? 답은 예상하는 것처럼 간단하다. 그리고 두렵다.

'강한 인공지능'까지 가지 않더라도 '약한 인공지능'도 실제 문제다. 수많은 기업과 노동시장에 있어 인공지능은 그야말로 원자폭탄이다. 예컨대, 테슬라는 단순히 자동차 회사가 아니다. 인공지능 무인자동차를 만들려는 회사다.

어떻게 보면 지구상 가장 비효율적인 아이템이 자동차다. 서 있는 시간이 거의 90퍼센트 이상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단지 이동수단일 뿐. 만약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결합으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의 이동이 얼마든지 가능한 무인자동차들이 거리를 주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상 존재하는 현재 차 숫자의 90%는 필요가 없어진다. 운전기사, 자동차 정비회사, 자동차 보험회사, 자동차 회사, 줄줄이 문을 닫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는 직업과 회사들이다. 더 좋은 자동차, 더 나은 엔진,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인공지능 기계들은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학습이 가능하다. 인간과 같은 능력이 있는데, 학습 방식은 선형이 아니다. 게다가 기계는 죽지도 않는다. 또한 인간보다 빠르게, 모든 정보를 흡수할 수 있다. 그 결과 폭발적인 학습 개선이 가능하다. 인간이 기계와의 격차를 지금은 어느 정도 벌려두고 있다. 양자의 상승곡선이 교차점을 지나고 나면 기계는 기하학적으로 좋아지게 되는 반면 인간은 쫓아갈 수 없게 된다. 그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 어느 시점부터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지적으로 기계를 못 쫓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그럼 우리는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20대까지만 해도 직접적 타격은 상대적으로 없을 겁니다. 기술적 변화에 따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려면 그에 따른 시간도 필요할 테고요. 사실 문제는 10대입니다. 200년 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교육 체계가 바로 국영수인데요. 글을 못 읽고 계산도 못하는 사람을 공장에 데려다 일을 시키려니 꼭 필요했던 게 국영수 교육이었지요. 그 덕분에 다 화이트컬러가 된 겁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젠 기계가 인간보다 국영수를 더 잘 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국영수를 공부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10대는 인류 역사상 기계와 경쟁해서 살아가야 하는 첫 세대가 될 텐데요. 이대로라면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할 위험이 큰 거지요.”

불도저 출현 이후, 사람이 아무리 삽질을 잘해도 기계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아이에게 삽질을 가르쳐 줬다가는 큰일 난다는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지금 초등학생에게 국영수만 들입다 가르쳐주면 20~30년 후 어떤 일이 생길까? 아찔할 따름이다.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걸 가르쳐줘야 한다. 그게 뭔지를 우선 찾아야 한다.

관건은 창의성이다. 반복 작업의 실행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출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아직 많은 회사들이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직원을 성실하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이런 건 모두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능력이다. 예컨대 리더십, 팀워크, 협상법, 공감 능력, 가르치는 능력들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기계는 이런 부분에서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뇌 과학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 강의는 무거운 경제·사회·철학적 고민을 남기고 끝났다. '약한 인공지능'만 해도 어렵긴 해도 풀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강한 인공지능'은 그 차원이 달라진다. 인류가 문제를 푸는 주체가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훨씬 똑똑해진 인공지능의 판단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직은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그 미래가 코 앞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그래서 기회이자 위협이다. 차원이 다른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올 개념, 바로 인공지능인 것이다.


끝으로, 뇌 과학자로서 김대식 교수가 조언하는 ‘좋은 두뇌 만들기’ 비법을 소개한다.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뇌도 몸의 일부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몸에 좋은 게 뇌에도 좋다. 다양한 운동, 신선한 공기, 멀티비타민, 오메가 3, 충분한 수면, 건강한 음식과 소식 같은 것들이다.

그 다음, 뇌에 인지적으로 좋은 게 있다. 뇌는 예측한 정보와 현실을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으면 무시하거나 추가 정보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복된 생활이나 뻔한 생각들보다는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좋다. 정보를 다양한 각도에서 역동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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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
미래가 한달음에 훅, 달려왔던 그날도 봄이었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던 미래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알파고 얘기다.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바둑. 바둑만큼은 인간이 한 수 위라 생각했던 우리. 오산이었다. 바둑은 361개의 착점에 놓은 돌로 승부를 가르는, 계산과 수리의 영역이었다. 인간이 ‘초울트라파워 계산기계’ 인공지능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예상을 뒤엎은 패배에 비관적 공포가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이노망고]의 혁신 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유튜브 채널 <방구석 5분혁신>도 운영한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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