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합리적일까? '무의식'을 '의식'하라!

인간은 합리적일까? '무의식'을 '의식'하라!

혁신가이드 안병민 대표
혁신가이드 안병민 대표

‘70% 세일’이라고 적힌 광고 현수막에 발걸음은 자석에 끌리듯 매장 안으로 향합니다. 딱히 살 게 있는 것도 아닌데 파격세일을 알리는 포스터 한 장에 마음은 이미 지갑을 엽니다. 팁 문화가 일상적인 미국 식당에서는 종업원의 외모 수준에 따라 팁 액수가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잘생긴 종업원이 일반 직원보다 팁을 40% 더 많이 받는다는 겁니다.

재미있는 실험도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두 개의 커피숍이 있습니다. 각각 스탬프카드를 발급해줍니다. A커피숍은 8장의 스티커를 모으면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줍니다. B커피숍은 10장의 스티커를 모아야 커피 한 잔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스티커 2장을 미리 붙인 카드를 고객에게 발급해줍니다. A커피숍이나 B커피숍이나, 공짜커피를 마시려면 스티커 8장을 모아야 하니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B커피숍의 고객들이 더 열심히, 더 빨리 스티커를 모으더라는 겁니다. 합리적인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든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기존 경제학은 사람을 합리적 이성의 존재라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행동경제학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합리성을 토대로 하는 기존 경제학에서의 인간 심리는 그 존재감이 크지 않은데 반해, 인간의 실제 행동패턴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깁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개념이 ‘넛지(Nudge)’입니다. ‘슬쩍 찌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 단어의 핵심은 ‘선택설계’입니다.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상대의 선택결과를 미리 설계하는 겁니다.

‘무의식 마케팅’ 또한 행동경제학과 그 출발점이 비슷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매번 체계적인 판단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블랙박스 같은 무의식 체계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기에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는 고객의 무의식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예컨대, “선물용으로 좋겠다”는 고객의 반응은 ‘내 돈 주고는 안 사겠다’는 무의식의 표현입니다. “젊은 사람들한테 좋겠다”는 반응은 ‘나처럼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별로다’라는 의미인 거지요.

그렇다면 이런 무의식은 의식과는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을까요? 의식의 본질에 대한 연구 중 대표적인 두 가지가 이른바 ‘대통령론’과 ‘대변인론’입니다. ‘대통령론’은 의식이 국가의 대통령 같은 기능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의식)은 거대 정부 관료 네트워크(=무의식)의 도움을 받지만, 중요한 결정은 대통령이 직접 합니다. 대통령 역시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곤경에 처할 수 있지요. 이게 의식을 바라보는 ‘대통령론’의 뼈대입니다. 반면 ‘대변인론’은 의식이 그렇게 결정적인 기능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기능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요지입니다. 대통령(=무의식) 집무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이슈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러 정황을 종합해 가장 합리적으로 정부(=무의식)를 대변하는 대변인(=의식)에 의식을 비유한 겁니다.

중요한 건, 두 가지 주장 모두 의식이 모든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학계에서도 대변인론에 무게를 좀 더 싣습니다. 그만큼 무의식이 중요하다는 방증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럴드 잘트먼 하버드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는 “시장조사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어도 신제품 중 80%는 결국 실패한다”고 잘라 말합니다. 척도화된 설문조사 같은 정량적 방법이나 낡은 정성적 조사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 소비자 욕구는 5%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북극곰 옆에 있는 음료는 왠지 시원해 보이고, 코알라 옆에 있는 음료는 따뜻할 것 같다고 대답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발로라서입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비용과 이득만 계산해 경제적,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케팅 리서치는 무의미하다고 일갈하며 스스로의 직관에 의존했던 고(故) 스티브 잡스, 이래저래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무의식, 앞으로 좀 의식하고 살아야겠습니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유튜브 채널 <방구석 5분혁신>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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