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고찰 : 집단주의도, 개인주의도 아니라고?

리더십 고찰 : 집단주의도, 개인주의도 아니라고?

혁신가이드 안병민 대표
혁신가이드 안병민 대표

오늘은 어제가 빚어낸 결과다. 지금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현재의 대한민국인 거다. 그렇다면 과거의 한국인들은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그게 어떤 것이었기에 지금의 성장을 이룬 것일까? 고려대학교 허태균 교수의 안내로 들여다보는 한국인의 속살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조직문화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한다. 수직적이다, 권위적이다, 소통이 안 된다, 류의 얘기들이다. 진짜 문제가 많은 걸까? 뭔가 이상하다. 문제가 많다면 전 세계에 유례 없는 경제 발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과거에는 조직문화가 건강하고 괜찮았는데, 최근 들어 안 좋아진 거라고? 문화라는 게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치면,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조직문화로 과거에 그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성과와 업적을 이루었다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세상의 변화라는 핵심 변수가 있다. 지금의 조직문화가 과거에는 성장의 토대였다. 정답과 표준을 만들어놓고, 수직적 위계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일을 하던 문화였다. 유례없는, 급격한 성장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근면성을 넘어 창의성이 중요해졌다. 수직적 위계가 아니라 수평적 네트워크가 중요해졌다. 그러니 과거의 조직문화가 작금의 족쇄가 된다.

각설하고. 특정 조직문화에 대한 성급한 평가는 위험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조급하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저녀교육를 떠올려보자.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길 원한다면? 독서와 공부가 가져올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충분히 알려주고 기다려준다고? 그래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기다려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너 그러면 망해. 인생 쪽박 찰 거야?” 가시 돋친 말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이유? 너무 열심히 일해서 너무 빠른 발전을 이뤄내서다. 우리는 이 속도에 모든 걸 맞춘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성장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무척이나 압축적이다. 200년 걸릴 성장을 우리는 50년만에 해냈다. 얘긴즉슨, 외국의 경우, 태어나서 살다 보면 죽을 때쯤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우리는 살아 생전에, 당대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살면서 평생 겪을 변화의 양으로 치자면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게, 너무 순간적으로, 계속 변한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와 달리 우리 인간은 참 안 변한다. 변하는 걸 싫어한다. 자책할 이유는 없다. 생겨먹은 게 그래서다. 우리 인간의 믿음이나 지식이란 게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서다. 모든 게 얽혀 있어서다.

“나는 콜라가 싫어”, “나는 비빔냉면이 좋아” 등 단순한 호불호 이슈 외에는 대부분 그걸 좋아하는 이유와 싫어하는 이유가 머릿속에 잘 조합되어 있다. 내 주변 사람들, 나의 가치관, 인생의 의미들,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얽혀 있다. 그러니까 특정 이슈에 대한 호불호 하나만 살짝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걸 바꾸려면 생각의 시스템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설득 요인이 있더라도 그거 하나 때문에 나의 생각 시스템 전체를 바꾸진 않는다. 변화보다 유지가 훨씬 쉬워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안 바뀐다. 오죽하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을까? 강산이 제일 안 바뀌는 거라서 그런 말이 생긴 거다. 지금은 아니다. 10년전 갔던 그 곳을 다시 가보라. 여기가 거긴가 싶다. ‘10년이면 인간도 변한다’라는 말을 써야 될 판이다. 인간이 강산보다 더 안 변해서다. 그 안 변하던 강산도 십년이면 다 개발된다. 반면, 바뀌지 않는 인간은 이제 백 년을 사는 세상이 되었다.

잘 바뀌지 않는 인간이란 존재를 설득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아는 우리의 선택지는 겁박이다. 겁을 준다. 불 난 집을 떠올리면 쉽다. ‘불이야’를 외치니 다들 튀어 나간다. 방향은 중요치 않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변화의 동력을 빚어내는 방식이다. 문제는 변화 방향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거다. 그러니 팝콘 터지듯 사방으로 튀어 버린다.

우리의 조직문화에 대한 진단이나 평가 이전에 더 중요한 게 있다. 과거 우리의 리더십과 조직문화가 왜 성공했고 왜 실패했는지, 차분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어느 방향으로 바꾸어야 할 지가 결정이 되어서다.

▶ 한국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조직 문화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성향이 그래서다. 문화라는 건 구성원들의 기대, 가치, 바람, 생각, 의지 등이 더해져 만들어진다. 우리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으로 인해 만들어진 게 우리의 문화다. 그렇다면 이런 문화를 만든 우리 한국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걸 알면 문화의 배경과 맥락도 알 수가 있다.

주체성, 가족확장성, 심정중심주의, 관계성, 복합유연성, 불확실성 회피.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지난 30년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찾아낸 여섯 가지 특징이다.

한국사람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남에게 영향을 받기 보다는 주고 싶어한다. 이게 절대 무시당하고는 못사는 한국인의 주체성이다. 가족확장성은 자신이 속한 모든 사회를 가족의 확장판으로 이해하게 한다. 또한 한국인의 행동은 공식적인 역할보다는 관계주의적 관점을 따른다. 조직 내에서의 공식적 역할보다는 옆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한국인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보다는 숨겨진 마음을 더 중요시한다. 소통이 힘들 수 밖에. 복합유연성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선택을 회피하게 만든다. 굳이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선택을 한국인은 싫어한다.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는데 왜 하나를 포기해야 하냐는 거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손에 잡히지 않는 걸 싫어하는 한국인에게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그래서 물질적인 만족과 수치로 표현되는 평가들에 의존하면서 한국인은 정신적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우리의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한 가지를 꼽자면 관계주의다. 이 얘길 하려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얘기다.

▶ 대한민국은 집단주의 사회인가?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가 개인주의 사회인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를 집단주의 사회라고 얘기한다.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점을 젊은 세대들이 비난할 때 꺼내 드는 개념이기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이자 오류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는 1970~80년대에 만들어진 사회심리학적 개념이다. 동양에 비해 우월한 문화를 갖고 있다 생각했던 서구의 시각에서 보니 동북아시아의 급격한 발전이 이해가 안 됐다. 아시아 문화가 뒤떨어졌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서구와 비슷해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데다, 당시 아시아의 모습이 과거 서구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였던 거다.

특히 당시 미국 경영자들을 당황하게 만든 게 일본이었다. 자기네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성공해서다. 미국을 턱 밑까지 따라와 세계 1위를 넘보니 당황할 수밖에. 이걸 연구해서 만들어낸 설명 논리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다.

그런데 웬걸, 우리나라가 집단주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 너무 많이 나온다. 우리 사회가 집단주의라면 나오면 안 되는 결과들이 나온다는 얘기. 사실은 과거에도 있었던 연구 결과다. 하지만 예전엔 인정을 못 받았다. 전 세계 99%의 심리학자가 한국은 집단주의라고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거였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한국 사회는 분노가 많을까, 적을까? 많은 것 같다. 연구 결과도 많은 걸로 나온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거리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라. 모두 화가 나 있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누구를 죽여라’ 아니면 ‘누구를 살려라’다. 근데 집단주의 사회는 분노가 낮다. 실제 연구결과를 봐도 집단주의 사회에선 분노 지표가 낮게 나온다. 재밌는 건 집단주의라 그러는 우리나라의 분노 지수가 엄청 높다는 거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유달리 분노할 일이 더 많아서일까?

한국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A그룹)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B그룹)으로 나눴다. 특정 사건에 대한 분노 지수를 분석했더니 B그룹(개인주의) 쪽이 높게 나왔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사람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사람들보다 분노를 적게 느낀다는 얘기다. 평소 느끼는 분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역시 집단주의적인 한국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한국 사람들보다 분노를 더 적게 느낀다. 상관계수를 보면 더욱 명확하다. 한국 사회가 집단주의 사회라면 분노 지표 역시 낮아야 맞다. 근데 높다. 이런 연구 결과가 한두 개가 아니다.

‘자기고양 편향’이라고 있다.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인간의 성향을 가리킨다. ‘잘 되면 내 덕분, 잘못되면 네 탓’ 성향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다’라는 믿음 같은 거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고 치자. 윤리적인 측면에서 1등부터 100등까지 매겨보라고 하면? 모두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평균이 50등으로 나와야 맞다. 하지만 결과는 10등이다. 연구 결과, 구성원의 90%가 자기는 상위 50% 안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이게 자기고양 편향이다.

이걸 비교 문화적 차원에서 연구했더니,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자기고양 편향이 낮게 나타났다. 개인주의 사회는 반대였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자기고양 편향이 세계 톱 수준이다.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한다. 다들 자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집단주의 문화라는 진단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대한민국은 개인주의 사회인가?

집단주의가 아니라면, 우리는 개인주의 문화일까? 많은 리더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젊은 직원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단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된단다. 만나자 그래도 싫다, 밥 먹자 그래도 싫다, 술 먹자 그래도 싫다, 리더 입장에선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요즘 MZ세대는 너무 개인주의인 것 같다고. 아니다, 그건 그들이 개인주의라서가 아니다. 그저 그 리더가 싫은 거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 리더들의 오해다. 싫은 거다. 다들 자기를 싫어하는데, 자기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며 그걸 빼놓고 설명을 하려니 젊은 사람들을 다 퉁쳐서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기주의네 개인주의네, 하며 말이다.

보다 중요한 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구분이다. 실제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이기주의는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거다. 개인주의는 자기 소신대로 사는 걸 가리킨다. 심리학적 표현으로는, 자신의 내적 요인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이 개인주의자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가 개인주의 사회다. 자신의 내적 요인에는 소신, 믿음, 신념, 태도, 성격, 취향 등이 들어간다. 그 외 외적인 요인들의 영향을 안 받거나 덜 받는다는 얘기다.

가령, 개인주의자가 이타적인 신념을 가지면 그 신념에만 영향을 받지 다른 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 세계 누구보다도 이타적일 수 있는 이유다. 개인주의인 서양 사람들 중 자기 것 다 버리고 평생을 봉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래서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신념이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라서다. 역의 명제도 성립한다. 개인주의자가 이기적인 신념을 가지면 전 세계 누구보다도 이기적일 수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라는 개념은 이처럼 서로 독립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혼동한다. 이기주의라는 말을 다른 사람의 영향을 안 받는 개인주의자에게도 쓰기 때문이다.

여기 어떤 젊은 의사가 있다고 치자. 성실하고 머리도 좋아 의사가 됐다. 의료시설이 없는 오지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사는 게 꿈이다. 이 사람이 진정한 개인주의자라면 다른 것 다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만약 내 주변에 이런 의사가 있다면 마냥 응원만 할 수 있을까? 아마 십중팔구는 이렇게 얘기할 거다. “그동안 네 부모님이 널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입고 싶은 거 안 입고, 먹고 싶은 거 안 먹으면서 널 키웠는데. 이제 네가 부모님 호강을 시켜드려야지 아프리카를 간다고? 이런 이기적인 놈!”

자기가 평생 누릴 수 있는 걸 다 포기하고 오지에 가서 평생을 봉사하면서 살겠다는 사람이 과연 이기적인가? 아니, 이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너는 네 꿈만 중요하니? 너는 네 인생만 중요해? 너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면 너는 행복하니? 널 사랑하고 널 걱정하고 널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니?” 우리나라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혼동하는 이유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걸 바람직한 형태라고 믿으며 산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똑같다.

식당에 가면 사람들은 메뉴를 보기도 전에 옆 사람한테 묻는다. “넌 뭐 먹을 거야?” 그걸 왜 물어볼까?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각자 메뉴판을 하나씩 준다. 각자 원하는 걸 주문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문화나 제도나 시스템은 괜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했다.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큰 찌개 하나 시켜놓고 같이 먹는 시스템이다. 모두가 예외없이 그 찌개를 먹고 싶어서 그런 걸까? 아니다. 싫어도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서다. 식당에 앉자마자 옆 사람한테 뭐 먹을지 물어보는 이유가 거기서 나온다. 상대가 뭘 시킬지에 따라 내가 시킬 메뉴를 바꿀 준비가 돼 있는 거다. 개인주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라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서구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부모도 자식한테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얘기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한테 주는 영향도 옳지 않다고 보아서다. 자식의 내적인 요인이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어서다. 부모 자체도 외적인 요인이기에 그 영향을 최소화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개인주의자다. 자식의 인생이 부모 때문에 바뀌어도 안된다고 생각을 하지만, 부모의 인생 역시 자식 때문에 바뀌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유, 독립의 개념들이 나온다. 권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만 자유를 침해 받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내적 요인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요인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게 자유의 본질적 개념이다. 스스로 자(自)에 말미암을 유(由). 모든 게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 그게 이들이 생각하는 자유다.

우리는 좀 다르다. 밖에서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실컷 외쳐놓고 집에서는 아이들 행동과 판단 하나하나를 간섭한다. 서구 개인주의 사회가 우리보다 대학 진학률이 낮고, 사교육이 적고, 교육 광풍이 안 부는 이유? 부모와 자식 간의 선을 지켜서다. 자식을 주체로 인정해주는 거다. 우리는 결혼도 대부분 부모 돈으로 한다. 이런데 개인주의라고?

▶ 대한민국은 개인주의화(化)의 길로 가고 있나?

개인주의가 아니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 간다는 명제는 사실일까? 그것 역시 아니다.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를 측정한 연구 41개를 찾아서 메타 분석을 했다. 각 연구의 집단주의 점수에서 개인주의 점수를 뺀 수치가 시대별로 차이가 없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의, 무게중심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 하나. 전체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만 개인주의화되어 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연령대별로 다시 분석했다. 결론? 젊은 세대이건 기성세대이건 차이가 없었다. 비밀은 다른 데 있었다. 어느 해의 조사를 보아도 젊은 사람에 비해서 나이 든 사람이 집단주의적이었다는 거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에 비해서 개인주의적이었다는 거다. 전 세계적인 공통현상이다. 종합하면,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보며 세상이 개인주의화되어 간다 착각한다는 말이다. 젊은 그들이 나이가 들면 나만큼 집단주의화되는 데 말이다. 그러니 전체로 보면 변화가 없는 거다.

▶ 대한민국은 관계주의 사회이다

그럼 결론이 나왔다.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도 아니고, 개인주의도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관계주의다. 전 세계의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를 연구한 내용들을 보면, 집단주의가 높은 나라에서는 개인주의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다. 개인주의가 높게 나오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집단주의성이 낮게 나온다. 우리나라는 특이하다. 둘 다 높게 나온다.

이걸 과거에는 설명을 못했다. 지금은 이렇게 설명한다. 개인주의라고 보기에는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집단주의라고 보기에는 조직의 영향을 별로 안 받는다고. 그러니까 둘 다 높게 나온다. 이걸 관계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개인주의는 자기의 내적인 요인이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거다. 서구의 개인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외부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 ‘개인주의가 아닌 걸 보니 집단주의구나’, 그동안 이렇게 생각했던 거다.

거기다 추가된 변수가 있다. 집단과 관계의 분리다. 과거에는 집단과 관계가 한 묶음이었다. 모든 집단이 작았기 때문이다. 작은 집단에서 평생을 함께 하다 보니 이는 관계로 이어진다. 과거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집성촌을 보라. 집단이 곧 관계다. 그러니 내 친척을 위해서 일하는 게 곧 마을을 위해서 일하는 거다. 마을을 위하는 일이 가족을 위하는 일이다. 기업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관계주의적 집단주의’다.

그런데 지금은? 조직이 커지면서 집단과 관계가 분리됐다. 회사를 위하는 일이 때로는 내 옆에 있는 동료한테 해가 될 때가 있다. 내 옆에 있는 동료를 위하는 일이 가끔 회사에 해가 될 때가 생긴다. 그럴 때 집단주의인 사람들은 회사를 선택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성향이 높다. 관계주의라서다.

집단주의와 관계주의를 구분하는 또 다른 기준이 있다. ‘인간의 부품화’다. 인간이 부품이 된다고? 왠지 부정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다. 자기가 하는 역할과 기능으로 자기를 규정한다는 얘기다.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부품들 중 없어도 되는 부품은 하나도 없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부품이 된다고 하찮아지는 게 아니다.

이토록 중요한 부품이니 정해진 기능과 역할 이하를 해서는 안 된다. 이상도 문제다. 시계의 톱니 바퀴는 천천히 도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빨리 돌아도 문제다. 컴퓨터가 가장 열심히 일할 때? 바이러스 먹었을 때다. 미친 듯 돌아간다. 그러니 부품은 주어진 일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그게 부품이고, 그런 사회가 집단주의 사회다. 기계처럼 맞춰서 돌아가는 거다. 매뉴얼대로, 원칙대로.

대표적인 나라? 일본이다. 정해진 그 일만 한다. 죽을 때까지 한다. 강박에 가까울 만큼 디테일에 집중한다. 그 작은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시스템이란 그런 거다. 이런 집단주의 사회의 특징 중 하나. 장인이 많다는 거다. 한 가지 일을 죽어라 30년 넘게 하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장인을 만들겠다며 마이스터고를 창설했다. 소용이 없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해서 취직을 하면 순환직으로 마구 돌린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정해진 대로, 규칙과 규정대로 하지 않는다. 대신 합의를 본다. 식사 메뉴도 합의해서 정하는 것처럼, 일도 사람들과의 합의를 통해 한다.

집단주의의 단점은 없을까? 있다. 경직성이다. 집단주의 사회는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다. 이걸 절대 스스로 못 바꾼다. 그러니 집단주의 사회에서 사고가 터지면 모든 게 마비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가 막히게 유연하다. 합의에 의해 금세 새로운 룰을 만든다.

무언가 합의만 되면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게 우리 사회다. 합의만 하면 더 천천히도 돌고, 더 빨리도 돈다. 심지어는 반대로도 돈다. 유연하고 빠르다. 전 세계에 유례 없는 경제 발전을 이루어낸 비결이다. 역동성이다. 기동성이다. 현장 적응력이다. 물론 우리 사회도 단점이 있다. 일관성의 부재다. 완성도의 결여다.

비즈니스 현장에 대입해보자. 사고가 터져 직원이 달려간다. 가서 보니 이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이 와야 하는 일이다. 집단주의 사회는 그 직원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우리는 담당이 아니어도 일단 한다. 그동안 보고 들은 풍월로 해낸다. 그러니 빠르다. 문제는 담당직원이 할 때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거다.

이러니 우리나라에선 전문성보다 사회성이 중요하다. 주변사람과의 소통을 통해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돌아야 되는지를, 빠르게 합의해내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합의가 중요한 관계주의 사회라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분쟁이 벌어지면 ‘맞냐 틀리냐’로 싸우지 않는다. 더 중요한 논점은 ‘왜 나한테 안 물어보고 했느냐’다. 합의의 부재를 가리키는 거다.

▶ 지혜로운 관계의 충족을 위하여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등 이유?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이고, 기성세대는 집단주의라서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관계주의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이 관계주의가 회사에서 충족된다. 50대 부장이라면 이 조직이나 업계에서 이미 30년 가까이 있었다.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집단이 곧 관계다. 젊은 직원은 다르다. 조직은 큰 데다 경험도 짧다. 관계주의 욕구가 회사에서 충족될 리 만무하다. 그러니 부품이 되겠다 마음 먹는다. 근데,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각자 역할이 명확한데, 관계주의 사회에서는 역할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5분 대기조가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김차장이 맡아주고, 나머지 직원들이 잘 좀 도와줘.” 관계주의 조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다. 가족끼리는 시키는 일만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프면 아빠가 하고, 아빠가 아프면 엄마가 하고, 엄마 아빠가 힘들면 자식이 한다. 이게 관계주의다. 그래서 명확한 역할 규정이 없다.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한다. 전문성의 결여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은 다르다. 불안하다. 평생 직장이 사라져서다. 이 조직에서 관계주의를 따라 전문성 없이 살다가는 제 2의 삶에 대한 준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50대에 은퇴해서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세대라서다. 그런데 조직에서는 전문성을 기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사회성만 부추긴다. 그러니 전문성을 추구하는 똘똘한 직원들이 사표를 낸다.

그들은 개인주의이고 우리는 집단주의라며, 서로 비난하면서 살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 모두 관계주의다. 이 관계주의를 과연 충족시켜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 찾아야 한다는 게 포인트다.

몇 달을 굶은 사람에게는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이 따로 없다. 죽기 직전이니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다. 똑같다. 과거 우리가 개발도상국일 때에는 외국의 다양한 시스템을 가리지 않고 도입했다. 빠른 성장의 배경이었다. 이제는 세계 10위권 국가다. 아무 거나 먹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게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내 체질을 알아야 한다. 내 몸에 뭐가 맞는지,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제일 안 했던 작업이 이거다.

옛날에는 개인주의이건, 집단주의이건, 뭐든 갖고 오면 성공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냐다. 이제는 우리만의 특성이 나와서다. 그 특성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우리가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리더들의 리더십과 조직 문화가 앞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빛을 발휘하려면 우리 스스로와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찬찬히 곱씹어본 오늘의 교훈은 이거다. 마케팅과 세일즈,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아울러서 경영? 역시 사람 공부다. 세상 공부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철학 공부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이자 [이노망고](innomango.com)의 혁신 크리에이터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유튜브 채널 <방구석 5분혁신>도 운영한다. 다양한 칼럼과 강의를 통해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는 도전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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